자금경색에 금리 눈치 보기…자칫하단 2008년 판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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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12.07. 오전 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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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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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도 잠깐 줄였지만 계속 언덕 올라야…

자전거에 짐을 싣고 언덕을 오르려면 출발부터 한번에 내딛어 끝까지 가는 게 수월합니다. 중간에 섰다가 다시 출발하려고 하면 비탈길이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그래서 중간에 속도가 늦춰지더라도 서는 것보다는 계속 오르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한국은행 금통위가 이런 처지입니다.

물가도 그렇고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도 그렇고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인데, 국내 자금시장 경색이라는 암초를 만났습니다. 잠깐 속도를 낮춰야 합니다. 빠르게 금리를 올리는 게 버거워 11월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낮춰 0.25%P만 올린 거죠.

내년 초 기준금리를 한 두 차례 더 올린 뒤에 상황을 지켜본다고 해도 곧바로 기준금리를 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랬다간 잡히는가 싶던 소비자물가가 다시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0%로 고점 대비 떨어지는 중이지만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 2%에는 아직도 한참 멀었습니다.

11월 기준금리를 소폭 올린 이유는 앞서도 말했다시피 국내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가계부채 때문에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부담이 클 거란 전망은 많았지만 기업 부담이 이렇게 빨리 닥칠 줄은 한국은행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강원도 레고랜드발 자금경색은 부동산PF 위기감을 넘어서 국내 기업들의 자금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혼란 이후 정부가 급하게 50조 원 + ∝ 라는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놓고, 한국은행이 8조 5천억 원 규모의 RP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 방안을 내놓았지만 단기자금 시장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일단 정부 대책 이후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채금리는 6일 오전 기준 3.626%로 9월 최고 4.548%에서 1%P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단기 시장금리를 대표하는 기업어음 CP 91일물 금리는 6일 오전 기준 5.54%로 정확히 석달 전인 지난 9월 6일 3.08%에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양도성예금증서, CD 91일물 금리 역시 6일 오전 기준 4.03%로 석달 전 9월 6일 2.93%에서 1.1%P 늘었습니다. 위 그래프에서 보듯 치솟던 금리가 최근들어 둔화됐지만 안심할 수 없습니다.

먼저 은행이 돈을 단기로 빌리고 써준 증서인 양도성예금증서, CD금리가 기준금리보다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자금시장에 우려스러운 부분입니다. 통상 0.2%P 격차를 보여야 하는데 최근 기준금리와 계속해서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에 연동한 가계대출 금리에도 악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 기업의 단기자금 조달 창구인 CP 금리 역시 최근들어 상승세가 둔화됐지만 여전히 금리가 높다는 건 레고랜드발 신용경색 위험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기업이 단기자금 조달 시 지나치게 많은 이자를 쳐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기업의 신용을 담보로 한 CP와 은행이 돈을 단기로 빌리고 써준 증서인 양도성예금증서, CD간 금리차가 최근 급격히 벌어진 건 그만큼 기업 신용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가 궁금한데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국내 주요 수출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자금조달 사정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수출기업 10곳 중 9곳은 현재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상황이 앞으로 6개월 안에 개선되기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기업 자금상황을 가장 잘 아는 기업 스스로 자금조달을 어렵게 보고 있다는 겁니다.

■ 미국 기준금리 "바라만 본다"

지난 8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로부터는 그렇지 않다"며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 우리나라 금리 결정에 중요한 변수임을 강조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연 3.25%,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은 연 4.0%입니다. 한국은행 금통위가 열리지 않는 12월에 미 연준은 0.5%p 기준금리를 더 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럴 경우 한미간 기준금리는 현재 0.75%p에서 1.25%p로 더 확대됩니다. 이창용 총재가 "미 연준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고 말한 건 미국의 빠른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기준금리 역전을 방치했다간 국내에 들어온 자금이 빠져나가 국내 자본시장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결국 현재 기준금리 방향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는 국내 소비자물가와 미국의 기준금리입니다. 특히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5% 안팎에서 장기간 머무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파월 미 연준의장은 11월 기준금리를 한번에 0.75%p 올린 뒤 이르면 12월부터 인상폭을 낮추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국내 자금시장을 생각한다면 하루 속히 미국 기준금리가 내려가길 기대해야 하지만 소비자물가가 7.7%인 미국에서 그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낮습니다. 단 언젠가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릴 때라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바로 따라 내려야 하는데, 자칫하다간 우리는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가 바로 그랬습니다.

■ 2008년 기준금리, 미국보다 13개월 뒤에 인하

2008년 금융위기를 겪기 4년 전인 2004년 6월. 미국 연준은 경기호조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이 때부터 무려 17차례나 꾸준히 기준금리를 올렸습니다. 미국은 한때 4%대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7년 2%대로 떨어졌지만 연 5.25%인 기준금리를 바로 안 내리고 고금리를 2007년 9월까지 1년 2개월 동안 유지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때는 물가나 경기부양보다 주택시장 부실이 더 우려스러웠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신용경색 충격이 너무 크자 뒤늦게 금리를 급격히 내립니다. 주택시장 부실이 결국 신용시장으로 전이돼 신용경색이 확산되면서 기준금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거죠.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내렸지만 주택시장 발 금융시장 충격을 이겨내지는 못했습니다. 바로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의 발발입니다.


이 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2008년 2월 이전엔 콜금리 목표)를 볼까요? 미국은 2007년 9월부터 기준금리(콜금리 목표)를 빠르게 내렸지만 한국은 그 다음해까지 높은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오히려 2008년 8월 기준금리를 무려 연 5.25%로 더 올렸습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이 높은 수준이죠. 당시 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은 배럴당 140달러 최고치를 찍으며 물가를 끌어올렸고, 한국은행으로선 당시 4~5%대였던 높은 소비자물가를 잡는 게 최우선 목표였습니다. 당시 경상수지 적자 해소를 위해 기준금리를 빨리 내려야 한다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고물가 해소를 위해 금리 인하는 안된다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간 기싸움도 치열했습니다.

그러다 한국은행은 두 달 뒤인 2008년 10월부터 기준금리를 급격히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제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우리나라에까지 확산되면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인하 행렬에 뛰어든 겁니다. 돌이켜보면 미국과 한국 사이 기준금리 인하 시기간 격차가 13개월이나 벌어져 있었습니다. 두 나라간 경제 상황이 달랐고 특히 한국은행은 물가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를 쫓아갈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13개월간의 시간동안 고물가, 고금리에 국민들은 힘들어했고 정부와 한국은행간 기준금리를 놓고 서로 반대 주장을 펼칠만큼 혼란이 컸던 겁니다.

■ "물가 못 잡으면 아무 것도 못 한다"

향후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2023년 하반기일 것이다" "2024년까지 고금리가 계속 유지될 것이다" 등 금융기관마다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문제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릴 때 우리가 재빨리 내릴 수 있느냐입니다. 우리가 물가를 확실히 잡아놓지 않으면 2008년처럼 미국은 기준금리를 내리는데 우리나라는 1년 이상 고금리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수정 전망치는 3.6%, 하반기만 봤을 땐 3.1%입니다. 2024년도 목표치 2%를 넘는 2.5%를 전망하고 있습니다.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 2%를 훨씬 웃도는 고인플레이션이 해소되지 않을 거라는 건데, 금융시장에서 대혼란이 오지 않는 이상 내년에 이런 물가 수준에서 기준금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24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최종금리에 도달한 이후에도 금리를 낮추기 위해선 물가 수준이 목표 수준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다는 증거를 확인한 이후에 금리 인하를 논의해야 한다”고 밝혀 내년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적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금융전문가들은 경기가 급격히 둔화되면 물가 목표치인 2%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해 경기침체와 고물가 사이에서 기준금리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됩니다.

반등의 시기만 전망이 다를 뿐 내년 한해가 힘들 것이란 전망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합니다. 내년을 제대로 대비하고 있는지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몫입니다. 특히 소비자물가를 잡지 못하면 정부나 한국은행이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적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물가 목표치 2%보다 2배 이상 높은 5%입니다.

(인포그래픽: 김서린, 대문사진: 신혜지)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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